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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기억

자야몽몽 2018. 1. 25. 14:41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희미해져간다. 지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월이 기억을 지워나가는 것일 테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조금씩 남은 기억을 기록해두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은 오른쪽 다리를 불에 데였을 때다.
부뚜막이 있는 집에 살 때였는데 식사를 마치고 난 아버지는 늘 "숭늉!"하고 외치셨더랬다.
그리고 당연한 걸 미리 준비해놓지 않는다고 엄마(또는 살림을 도맡아하던 외할매)께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남존여비, 여필종부를 사명처럼 짊어지고 살던 모녀는 "에고, 내 정신 좀 봐라."하며 마치지 못한 식사를 중단하고 숭늉을 뜨러 가곤 했던 것이다.
그런 모양이 보기 싫었던 건지 하루는 내가 숭늉을 떠오겠다고 벌떡 일어났다.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다녀와야겠다고 급한 마음에 부뚜막으로 내달았는데 상 옆에 놓여있던 국솥을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 그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국물범벅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의 식사시간은 초를 다툴만큼 빨라 국솥에 담겨 있던 국은 거의 식지도 않은 채였다.
순간 식사자리는 초토화되었다. 엄마가 재단에 쓰는 가위를 가져와 바지를 잘라내고 소금 섞은 참기름을 발랐다(사실 난 이 부분부터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절이라도 한 것인지.. 엄마 말씀으론 잘라낸 바지에 살점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병원에도 가지 않고 소금과 참기름 만으로 치료를 했다는데도 화상자국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엷은 흉터만 남았다. 지금은 그 마저도 찾기 힘들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진 목욕탕 갈 때마다 어찌나 신경에 거슬리던지..

엄마 말씀으론 두세살 때 일이라고 하는데 내겐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다.